태그 : 잔디벌레

리뷰를 써도

댓글 하나 달리지 않는 슬픔. -_-;;;

난 쓰나마나 orz...

by Nova_Mania | 2008/10/25 11:32 | Adventure for dream | 트랙백 | 덧글(7)

모든 것에 대한 두가지 의미 '잔디벌레' 비평


잔디벌레

이중성-.에 대한 이야기. 임희정의 '잔디벌레'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앞에 언급했던 '이중성'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게끔 만든다. 모든 것이 '서로 반대되는 자석의 극들'처럼. 쉽게 나뉘어지지 않을 것 같음에도 불구하고 - 성격과 같은 부분에서도 그는 두가지로 나누어버리고야 만다.. 단순화가 아니라 조금 미묘할 수도 있지만 모든 사람들을 두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을만큼 단순화 되어있다 - 그는 모든 것에 대해 이중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

코카인은 '한 사람을 폐인으로 만들 수' 있는 물건이거나 혹은 '국부마취를 위한 마취제'로 사용될 수 있는 이중적인 물질이다. 이 글 전체를 아우르는 이 물건으로 인하여 수많은 이중성이 생기게 된다. "보통 사람들과 다른 존재가 아니라는 것에 대한 증명"의 실패를 증명하는 방법의 가장 큰 방법으로 등장하거나 아니면 "자의와 상관없이 칼질"된 사람으로 일반의 사람들에게 비추어지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물건의 이중적인 의미처럼, 그것을 다루는 사람에게도 있어서 이중적인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주인공은 "국부마취의 수단"이 아닌, "어머니를 만나기 위한 수단"처럼 왜곡되어 있는 것으로 이야기하며 "천재"인 웨인을 "더욱 비범한 사람"으로 만들게 되는 사물이 된다.

이처럼 결코 아름답지 않은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임희정은 [주인공들의 시선]을 통해서 세상을 아름답게 보고자 한다. 신이 존재한다고 믿으며, 그 신이 인간에게 내려준 계급이 존재하는 불공평한 사회에서도 그는 신을 부정하며 처음부터 비정상적으로 태어난 아이들과 도중에 죽는 사람들은 '신에게 버림받지 않았다'며 보통의 사람들에 대한 동정을 끊지 않으려고 한다. 허나, 그들 자신도 "사회 속"에서는 "돌연변이"로 취급받으며 "미치지 않고서 살아가고자" 노력을 필사적으로 할 수 밖에 없다.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미움받는 어떤 사람의 "한 줄기 빛"을 찾은 방법이 "미워하기 힘들어서 차라리 좋아하게" 되는 것이라던가, 연속된 사고 속에서 괴로워하는 주인공에게 "사고를 몰고 다니는 재앙 덩어리"는 "죽어서 사라지"는 것은 방법이 아니라고 하는 것처럼, 결코 옳지 못한 것에 대해서, [보복성이 있는 수단]을 이용하여 대처하기 보다는, "내 잘못에 대한 벌"로 인식하면서 자신들을 "칼질"하고 있다. 그들 자신들은 "환상속에 가둬둔" 사람들에 의해 "코카인"인해 폐인이 된 사람처럼 보이지만, 자신들은 "치료를 위한 국부마취의 수단"으로서 코카인을 이용할 뿐이지, 절대 자신들의 타락하는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코카인으로 인해 생긴 예지력도 자신들이 간섭하여 더 커진 문제와 방치해두어 되돌릴 수 없는 사태 사이에서 "미래를 피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만 "오히려 가까이 오거나" "원점으로 돌아오기" 밖에 할 수 없는 문제를, 그 전에 미리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로 하자는 부정적인 생각과 긍정적인 생각들 사이에서의 해답. "남들에 비한 우수함"도, "미래를 보는" 사실도 그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이 글의 가장 중요한 소재인 "사람을 살리기 위한" 의학으로 그들의 말하고자 하는 바는 시작하며, 또 그것으로 끝난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사실은 아름다운 세상은 절대 "환각"이 아니라는 것과, 그것이 "타락의 방법"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의학을 통해서 작가는 '누군가를 위한 것'은 절대 "미치지 않고서" 할 수 있는 짓도 아니며, "재앙"도 절대 아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으리라.

p.s 오타는, 보면서 군데군데 발견했는데... 조금 수정되었으면 하는 바램
p.s2 리뷰는 참 오랜만에 쓰네요 -ㅁ-

이글루스 가든 - 천 권의 책읽기

by Nova_Mania | 2008/10/18 17:24 | Novel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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