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5월 23일
진실은 저 너머에 - 노잉(Knowing) -

50년 전에 한 학교에서 기념비적인 행사 - 50년을 보전하기 위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 을 하기 위해 전교생의 그림을 모아서 땅 속에 묻는다. 그 중에 한명의 그림이 MIT 교수인 테드 - 니콜라스 케이지 역 - 에게 넘어가고, 그가 알아낸 것은 그 숫자들이 언제, 어디에서, 몇 명이 죽게 될 것인가 하는 이른바 '죽음의 암시, 혹은 죽음의 예언장'. 아무것도 모른채로 아내를 저 세상을 보내어야 했던 니콜라스 케이지에게 있어서 그것은 자신의 생각 자체를 모조리 바꿔놓는다.
'우연적'인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숫자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그 모든 것이 자신을 제외하고 짜여진 도박판처럼 너무나도 질서정연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으로서 그것을 막을 방법은 도저히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에 괴로워 하고 막아보려 발버둥도 쳐보지만 그저 그것은 시도일 뿐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예고된 결말로 치닫는 영화는 오히려 반전따위를 허락하지 않고 그대로 - 노잉, 이라는 영화제목 그대로 - 흘러간다. 지식이라는 뜻. 사물을 아는이라는 뜻. 재앙, 그리고 숫자. 이 모든 것이 너무나도 기묘하고 복잡하게 얽혀있다. 모든 것이 결정되어있다는 결정론과 그 반대로 우연의 연속으로 지금의 결과가 이루어졌다는 이론들 가운데에서 이 영화는 과연 무엇을 이야기하려 했던 것일까.
종말 - 지구가 멸망하게 되는 - 을 맞음에도 불구하고 그 가능성은 두 아이에게 여전히 남아서 인류의 세대는 계속된다는 이야기는 마치 기독교의 '노아의 방주'를 생각나게 한다. 그 모든 것을 이야기하려고 하는 외계인. 가능성이 없는 어른은 데려갈 수 없다는 것은 '타락한' 사람을 구원할 여지가 전혀 없다는 뜻으로도 이야기되며 '노아의 방주'를 준비하게 하는 '신'에 빗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환청도 어린아이에게만 들렸던 - 구원의 가능성이 있는 존재에게만 발현되는 것 - 것으로 보아 '신이 구원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내리는 '예언' 같은 분위기도 난다. 숫자가 빼곡한 종이 역시 '경고'의 의미로서 한편으로는 '예언서'에 빗대어서 이야기할 수 있다.
극중의 마지막으로 가서 '모든 인류에게 던지는 경고였던 거야'라는 말을 하며 체념하지만, 그래도 마지막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 그곳으로 돌아가야 살 수 있다라고 이야기하던가, 아들과 종반에 헤어지기 싫다는 부분에서 어느정도 여지는 나오지만, 어른은 데려갈 수 없다고 하는 부분 - 니콜라스 케이지의 모습에서 살 수 있다는, 혹은 이 재앙에서 구원받을 수 있다는 희망은 있지만, 현실은 희망만으로 살 수 없다는 - 현실의 모습인 '뉴스를 아이에게 보여주지 말라'는 말에서처럼 - 것을 여과없이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조약돌과 어린아이. 이것들의 공통점은 여러가지 답안이 나올 수 있겠지만, 이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중간지점'이 될것이다. 무엇인가가 되기 위해서 거치게 되는 공통과정. '노잉' 이라는 영화의 제목 - 모든 것이 알고 있고, 그 순서대로 흘러가는 종이. 그리고 사건들 - 과는 정반대로 그것들은 어떠한 것으로 변화될 여지 - 어떤 어른이 될지도 정해지지 않았고, 조약돌도 개울가의 돌이 되던가, 사막에서의 모래가 되던가, 정글에서의 진흙이 되던가 하는 가능성 - 가 아직 남아있다. 그럼에도 구원의 여지는 무엇일까? 에 대한 답은 영화 내에서는 찾을 수가 없다. 단순히 종교를 믿는 '목사'도, 종교를 믿지 않는 '과학자'도, 혹은 아무것도 모르고 지내던 보통의 사람도 '어른'이었기 때문에 모두 똑같은 결말을 맞게 되는 이 영화에서, 구원을 받기 위한 방법은 무엇이란 말인가. 다 좋았지만, 하나 아쉬운 점은 바로 그것이다.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다. '변화될 여지'가 있는 것에만 '구원의 여지'가 있다고 어린아이를 통해서 어렴풋이 보여주기는 하지만 보여주는 식으로 끝날 뿐이다. 구원받은 아이들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는 모습은 '정답'은 정답이 될 확률이 있다는 것 뿐이다. 영화 제목 '노잉'에 전혀 반대되는 애매모호한 대답 아닌가. 진실도, 거짓도 모두 알고 있어야하는데, 그것을 보여주지 않는 것일 뿐일까. 그것은 찾을 수 없으리라.
하지만 영화와 달리 우리들의 삶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구의 멸망이 단순히 사람의 '삶에 있어서 끝은 아니다'라는 극중 목사의 말처럼, 자신의 결말은 자신이 끝나지 전까지는 아무도 모른다. 보여주지 않는 것에 대한 상상은 그것을 꿈구는 사람의 몫이다.
# by | 2009/05/23 16:38 | 영화 리뷰 | 트랙백(2)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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