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7월 23일
함부로 동정해서는 안돼.
아프간 피랍사태에 대한 여러가지로 말이 많다. 사람은 소중하다-. 사람의 목숨은 철군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일이라고. 선교원들이 돌아오는게 우선이다, 라고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한다. 그들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블로거들이 마냥 착하기만 한 것 같다. 그들의 주장 속에는 탓해야 할 대상은 탈레반이지 기독교가 아니라는 이야기도 있다. 그런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가보면, 나는 굉장히 나쁜 녀석이다. 그들이 돌아오지 않았으면-. 하고 내심 속으로 바란다. 여러가지 이유를 대면서 이건 아니다-. 라고 이야기한다.
돌아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꼴불견일 것이다. 사람의 목숨을 너무 가볍에 여기는듯한 말투로 말을 이어가고 있으니말이다. 아니, 나는 사람의 목숨을 경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한 사람의 목숨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내 대답 '사람 한명 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이다. 사람의 목숨은, 딱 그것만큼의 가치가 있을 뿐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다른 것과 비교할 수 없다지만, 비교의 대상이 다르니까 비교가 불가능한 것이지 어떤 것이 너무 무겁고 어떤 것이 너무 가벼워서가 아닌 것이다.
이미 한번의 사례를 겪었는데도 '이번 사태'에서 그런 식으로 협상에 응한다면, 그 다음은 없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는가? 그렇게 말하는 주장의 근거는 무엇인가? 생명이 소중하니까? 그렇다면 만일에 교포수가 단 23명이거나 그보다 작을 때, 나는 이번 사태에 협상에 응하는 것에 찬성하겠다. 생명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지만, 23명의 목숨과 이곳저곳에 흩어져 사는 교포들의 목숨값을 비교한다면, 교포들의 목숨이 훨씬 무거운 것이다. 지금은 그들이 '피해자'의 위치에 있지만, 이번 협상이 성공하면 '교포'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가해자'의 위치에 서게된다. 그런 그들의 목숨을 23명 때문에 죽음의 경계로 내몬다니 끔찍한 생각 아닌가.
그들은 그런 식으로 현재에 애매모호한 위치에 서 있다. 단순히 '피해자'인 것만은 아닌 것이다. 어떻게 되었든 '가해자'가 될 수 밖에 없는 정부와 상황에 따라서 '피해자'가 되지 않을 수 있는 '교포'들과는 다르게 말이다. 그러한 위치에 있으면 '피해자'의 시선만으로 지켜볼 수만은 없다. 더 위험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사안이면, 그 전에 싹을 잘라버려야 한다. 23명의 목숨이 중요한 것은 맞지만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교포들의 생명이다. - 국가의 위신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거야 국가 범위에서의 이야기이지 한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 말이다. 국가의 위신따위가 개인에게 있어서 생명보다 소중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
애매모호한 위치에서 서 있으면, 그들은 감히 '동정'받아서는 안된다. '자신'들이 자초한 일. 그들이 단순히 '피해자'라고 한다면, 정부는 그들을 구하는 것이 맞다. '국가'는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으므로. 그런데, 정부는 과연 그 역할을 다하지 않았는가? 그렇지는 않았잖은가. 국가는 '가해자'의 입장에 서지 않기 위해 굉장히 많은 노력을 했다. 국가는 그들을 지키기 위해서, 출국금지라는 굉장히 강경한 수단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졌던 권리를 내팽개치고 '선교' 활동에 나섰다. 그들 스스로를 '봉사단'이라는 이름으로 정화시키면서 '국가'를 '가해자'의 입장으로 내몰았다. 이런 입장에서 보자면 그들은 이미 가해자다. 그러한 그들에게 함부로 동정표를 던지는 것은 자칫 가해자를 용서하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교리'에는 죄를 미워하되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고 했지만, 죄를 저지른 것은 그 사람이다. 함부로 용서받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돌아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꼴불견일 것이다. 사람의 목숨을 너무 가볍에 여기는듯한 말투로 말을 이어가고 있으니말이다. 아니, 나는 사람의 목숨을 경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한 사람의 목숨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내 대답 '사람 한명 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이다. 사람의 목숨은, 딱 그것만큼의 가치가 있을 뿐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다른 것과 비교할 수 없다지만, 비교의 대상이 다르니까 비교가 불가능한 것이지 어떤 것이 너무 무겁고 어떤 것이 너무 가벼워서가 아닌 것이다.
이미 한번의 사례를 겪었는데도 '이번 사태'에서 그런 식으로 협상에 응한다면, 그 다음은 없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는가? 그렇게 말하는 주장의 근거는 무엇인가? 생명이 소중하니까? 그렇다면 만일에 교포수가 단 23명이거나 그보다 작을 때, 나는 이번 사태에 협상에 응하는 것에 찬성하겠다. 생명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지만, 23명의 목숨과 이곳저곳에 흩어져 사는 교포들의 목숨값을 비교한다면, 교포들의 목숨이 훨씬 무거운 것이다. 지금은 그들이 '피해자'의 위치에 있지만, 이번 협상이 성공하면 '교포'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가해자'의 위치에 서게된다. 그런 그들의 목숨을 23명 때문에 죽음의 경계로 내몬다니 끔찍한 생각 아닌가.
그들은 그런 식으로 현재에 애매모호한 위치에 서 있다. 단순히 '피해자'인 것만은 아닌 것이다. 어떻게 되었든 '가해자'가 될 수 밖에 없는 정부와 상황에 따라서 '피해자'가 되지 않을 수 있는 '교포'들과는 다르게 말이다. 그러한 위치에 있으면 '피해자'의 시선만으로 지켜볼 수만은 없다. 더 위험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사안이면, 그 전에 싹을 잘라버려야 한다. 23명의 목숨이 중요한 것은 맞지만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교포들의 생명이다. - 국가의 위신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거야 국가 범위에서의 이야기이지 한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 말이다. 국가의 위신따위가 개인에게 있어서 생명보다 소중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
애매모호한 위치에서 서 있으면, 그들은 감히 '동정'받아서는 안된다. '자신'들이 자초한 일. 그들이 단순히 '피해자'라고 한다면, 정부는 그들을 구하는 것이 맞다. '국가'는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으므로. 그런데, 정부는 과연 그 역할을 다하지 않았는가? 그렇지는 않았잖은가. 국가는 '가해자'의 입장에 서지 않기 위해 굉장히 많은 노력을 했다. 국가는 그들을 지키기 위해서, 출국금지라는 굉장히 강경한 수단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졌던 권리를 내팽개치고 '선교' 활동에 나섰다. 그들 스스로를 '봉사단'이라는 이름으로 정화시키면서 '국가'를 '가해자'의 입장으로 내몰았다. 이런 입장에서 보자면 그들은 이미 가해자다. 그러한 그들에게 함부로 동정표를 던지는 것은 자칫 가해자를 용서하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교리'에는 죄를 미워하되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고 했지만, 죄를 저지른 것은 그 사람이다. 함부로 용서받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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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내용에 집중을 해야 하겠지만서도. by 혜새진날
- 아프간 피랍 한국인들.... by 다스베이더
- 아프간 피랍사태...... by アムロ
- 피해자 애호가 by loki
# by | 2007/07/23 03:48 | 한번은, 혹은 다르게 | 트랙백(1) | 덧글(8)







제목 : 이젠 한국 선교의 방향이 바꿔야 할 때입니다.
요즘 분당샘물교회의 23명 청년의 탈레반 납치로 인해 해당 교회도 정부도 현지교민도 노심초사 하고 있습니다. 바로 전 MBC 뉴스데스크를 보니 분당샘물교회 청년이 납치되었던 곳을 간만의 차로 한동대 자원봉사단(한동대는 개신교 계열 대학이죠)이 지나갔다고 하더군요. 이들도 분당샘물교회 청년의 납치를 한참 뒤에나 알았다고 합니다. 샘물교회의 의료봉사활동은 최근 몇년간 개신교계에서 유행하고 있는 단기선교의 한 형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의......more
책임을 져야 되지 않나 싶습니다. 이번에 탈레반에 억류중인 23명의 청년들은
단기선교를 하겠다는 일념하에 참여한 청년들일테구요.
이번 분당샘물교회 사태는 교회 하나의 문제가 아닌 개신교계의 고질적인 문제가
발현된 셈이라고 생각합니다. 23명 역시 위험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아프간으로
간 점은 충분히 비난받을 수 있겠지만... 정작 비난을 해야 되는 쪽은 따로 있다는
점을 간과하지는 말아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개신교인이지만 현재 탈레반에 억류중인 23명의 청년에게 동정심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어떻게든 협상이 잘 되서 안전하게 돌아왔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할 따름이죠. 차후에는 이런 문제가 괜히 발생되지 않았으면
좋겠군요)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범죄자들이 사고쳤다고 국가의 파병결정에 대해 조속한 철군을 요구중인겁니다. 이거 법정모독..아니지..공무집행방해? 어쨌던 전 법조인은 아니니까 넘어가구요. 사람의 목숨이 중요하니까. 라고 말씀하신다면 할말없습니다. 그건 옳은 말이니까요. 하지만!
분명한 책임소재는 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풀드림님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일단 살려와서 그 죄를 물어야 할것입니다. 또한 차후에 다시는 이런문제가 발생치 않도록. 강력한 권고가 필요할겁니다. 그 특정 종교단체 말입니다.
그리고 딴거보다
부모님이 내신 세금이 저런데 들어가야한다는게 아깝습니다.....
그리고 이번 사태를 통하여 개신교측에서의, '선교'와 관련한 본질적인 부분을 다시금 생각하고 반성하는 자세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분명히 인지시켜야 한다는 점은 변함이 없습니다.
카뮈// 그들이 돌아오지 않았으면 싶습니다. 그 23명때문에, 우리 교포들이 언제 목숨의 위협을 느낄지 모르는 사태가 발생하면 절대로 용서하지 못할겁니다. 아예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들이 살아오기를 빌겠지만 말이지요. 후상황은 아무도 모르는겁니다.
권모씨// 글을 제대로 읽지 않으셨군요(...) '재외 교포'들 전체와 23명을 비교하면 어느쪽의 목숨이 경이고 어느쪽의 목숨이 중일까요?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한 사람의 목숨'은 '사람 한 명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언급했습니다. 단 23명 때문에, 교포들이 위험에 처하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아요. 해외에 나가있는 지인들만해도 23명이 넘거든요. 살려와서 죄를 묻는다-. 라고 하셨는데, 그럼 어떤 방식으로 죄를 물을지는 생각해보셨나요? :D 그들이 저지른 가장 큰 죄는, 자신들 때문에 군이 철수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테러'의 여지를 감히 남겨둔 죄입니다. 사람 23명의 목숨으로 그보다 많은 사람을 살려야 한다면, 위험하지만 저는 그들을 죽여야한다고 이야기할겁니다. 전 그래서 못된 녀석이지요.
은박지// 아깝지요. 분통 터질 것 같습니다. 전 제가 벌어서 부모님에게 드려서 세금을 충당하는데 말이지요.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고말고 할 여지도 남지 않았어요.
바로//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협상에서 좀 더 유리한 고지를 점한다-. 라고 이야기하고 싶으신 것이군요. 아쉽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사람들을 구하는데 '무엇'과 비교할 수 있나요? 비교의 대상이 다릅니다. 분리해서 이야기 할 수 있는 사안이겠지만, 그랬다가 자칫 잘못해서 한가지를 빠트릴 수 있지요.
전설의실버팽// 광신적 성향-. 과 그에 대한 반성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 목숨'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23명의 목숨을 건져서 그보다 많은 사람들이 위험에 처한다면 과연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라는 것입니다. 현 정부가 '국민'의 생존권과 관련하여 마땅한 협상을 하고 있다는 부분은 맞지만, '피랍된 자국민'이라는 한계가 설정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한계를 가지고 단기적인 협상을 하는 것이 옳은지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